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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보다 한 권의 가르침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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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1-11-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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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향토유적 제2호, 경기도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된 둔촌(遁村) 이 집(李集·1327~1387·고려말 성리학자) 선생 묘가 중원구 하대원동에 위치한다. 둔촌 이 집은 고려 말기 포은 정몽주, 목은 이 색, 도은 이숭인과 나란히 국운을 문학에 담아낸 지조를 지킨 큰 어른으로 추앙받고 있다.

 

둔촌 이 집 선생이 성남에 적을 두고 있다는 의미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며 복일까? 둔촌이 세 아들에게 가르친 정훈(庭訓)은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독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공부하여라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한 후회만 하느니
머리맡 세월은 멈추지 않고 화살 같네.

 

자손 앞에 금을 광주리로 준다하나
경서 한 권 가르침만 못하느니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너희들을 위하여 간곡히 일러두네.”

 

庭 訓


其 一(그 하나)


讀書可以 悅親心(독서가이 열친심)
勉爾孜孜 惜寸陰(면이자자 석촌음)
老矣無能 徒自悔(노의무능 도자회)
頭邊歲月 苦駸駸(두변세월 고침침)

 

其 二(그 둘)


遺子滿彎金(유자만영금)
不如敎一經(불여교일경)
此言雖惔薄(차언수담박)
爲爾告丁寧(위이고정녕)


이 가훈은 성경 열왕기상 3장 1~14절에 나오는 하느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준 것과 일맥상통한다.

“솔로몬이 기브온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


하나님 그에게 이르시되,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둔춘의 세 아들은 아버지의 정훈을 따랐다. 둔촌의 장남은 지직(之直)은 형조참의를 지냈으면서 청백리로 뽑힌 인물이다. 지직의 호는 탄천이라 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아버지 둔촌의 묘소를 바라보는 언덕에 집을 짓고 속세를 떠나 고고한 선비로서의 일생을 마쳤다 한다. 둘째인 지강(之剛)은 우참찬, 셋째 아들인 지유(之柔)는 목사를 지냈다.

 

이지직은 아들 이장손(李長孫) 사인(舍人), 인손(仁孫) 우의정(右議政), 예손(禮孫) 관찰사(觀察使) 등 명관(名官)을 두어 명문 인맥을 이어나갔다.

 

둔촌의 손자인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은 다시 ‘5자등과(5子登科)’하여 광주 이씨(廣州李氏)는 일대 중흥을 이루었다 한다. 이극배(李克培) 영의교(領議敎), 극감(克堪) 판서(判書), 극증(克增) 공신(功臣), 극돈(克墩) 좌찬성(左贊成), 극균(克均) 좌의정(左議政)이고 ‘5자당상(5子堂上)’의 영예 속에서 각기 화려한 광주 이씨(廣州李氏) 지맥(支脈)을 뻗었다.

 

이극감의 아들이 광양군(廣陽君) 이세좌(李世佐)이고 이세좌(李世佐)의 손자로 병조판서(兵曹判書) 이윤경(李潤慶)과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이 있다.

 

이극균(李克均)의 4대손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민성(李民聖)이고 이민성의 아들이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다. 이덕형(李德馨)은 ‘혼조 3이(昏朝 3李)’라 하여 이항복(李恒福) ㆍ이원익(李元翼)과 더불어 왜란(倭亂)에 짓밟힌 사직(社稷)을 지탱한 명신(名臣)이고 정치적 명성뿐만 아니라 학행도 높았다 한다.

 

이덕형(李德馨)의 7대손이 한국 천주교의 사상적 바탕을 이룩한 서학(西學)의 선구자인 이기양(李基讓)이라 한다.

 

사초(史抄)에 나온 둔촌의 훌륭한 후손이야 말로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로 둔촌 이 집의 정훈, 즉 둔촌의 정념이 만들어 낸 큰 인맥의 줄기다. 성 현의 “용재총화” 기록에서 “지금의 성씨 가운데 광주 이씨가 단연, 번성함이 최고다”라는 표현이 맞다.

 

둔촌 이 집을 바라보는 당대의 문필가들의 말이다. 목은 이 색은 “성인의 도를 얻은 사람”이다고 했다. 포은 정몽주는 “세속을 초원하여 고결한 경지에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도은 이승인은 “호연의 기를 체득한 사람”고 말했다. 삼봉 정도전은 “의사(義士)로서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호정 하륜은 “용모는 장중하고 강의해 보였으며, 기품을 꽉 짜이며서 준수하였고, 음성은 옥이 구르는 듯 하면서 명확하고 유창하다”고 표현했다. 이휴징은 “밝기가 해와 별 같아서 백대에 두고 영원하지 않은가?”라고 칭송했다.

 

민병하 광리회보 5호에는 “둔촌은 의모가 충만하고 언어가 경책하며 기성이 강개하고 효행이 지극하며, 고난을 의의 용기로써 극복하고 그것이 더 할수록 뜻은 더욱 굳어지며, 문장과 지절이 뛰어나 참으로 성인의 성에 도달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둔촌의 학문상이요 인간 갓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실었다.

 

성남문화원 한춘섭 원장은 “고려의 운명이 다해 갈 때, 곧은 지조와 절개를 지켜 낸 역사 인물이 둔촌 이 집 선생이다”고 말한다.

 

“지극한 간호와 효성으로 아버지의 병을 치료한 남한산성 ‘국청사 우물’ 이야기는 바로 둔촌의 효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둔촌 선생은 신돈이라는 승려의 독재를 강력히 비판했다가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어 늙은 부친을 업고 영천으로 피신하여 3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둔촌 선생은 대인관계에서도 남다른 신뢰를 쌓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둔촌 선생은 친구인 천곡 최원도의 집에서 3년간 피신생활을 하면서 천곡의 부인과 여종 연아 등 가족들의 희생적인 보호를 받았다.

 

이런 연유로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음력 10월 10일이면 두 가문이 같은 날에 묘제를 지내고 서로 상대방의 조상에게도 잔을 올리고 참배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한 원장은 “둔촌 이 집의 추모사업은 개인사업 또는 광주 이씨 대종회의 문중사업 차원을 뛰어넘어 범 시민적인 문화행사로 지속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청소년 및 전체 시민의 사표로서 추앙받아 마땅하리라고 생각하며, 더 깊은 연구 및 향토문화의 큰 인물로서 그의 거룩한 정신을 계승하는 성남의 시민정신을 계도해 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둔촌을 기리기 위해 성남문화원과 둔촌연구회는 매년 ‘2010 둔촌 백일장’대회를 열어 올해 15회째를 맞았다.

 

백일장 대회는 청소년백일장, 한시백일장로 나누어 진행된다. 이 행사는 ‘성남의 큰 어른 둔촌 선생의 효행과 충절심을 시민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연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10년 10월 22일(음력 9월 보름) 오후 6시, ‘둔촌 이야기 자리 일곱 번째, 가을, 둥군 날 밤에’ 행사를 하대원동 소재 둔촌 사당 ‘추모제’가 있었다.

 

이날 축하공연은 소리향 국악실내악단이 ‘방황’, 국악가요 ‘산도깨비’, ‘소금장수’를 ,성남무용협회 김종해 지부장과 정경미의 한국무용 ‘사랑가’, 둔촌 선생 작 ‘추회(秋懷)’ 시낭송을 시립합창단 안효영 단원이, 한춘섭 작시, 이선택 작곡 둔촌선생 추모 ‘큰 기침 소리’, ‘탄천연가’와 가곡 ‘저 구름 흘러 가는 곳’ 을 성남시립합창단이 연주하고, ‘2010 둔촌 백일장 입상작’ ‘둔촌 할아버지’, ‘둔촌 큰 얼굴’을 중국 심양시 교육국 이종태 처장과, 심양시 교육연구실 박영철 주임이 낭송하며, 마지막 순서로 한춘섭 문화원장의 ‘산책길에서 만나는 둔촌’ 특별강연이 이어졌다.

 

E.F.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저서에서 “최상의 원조는 지식원조, 즉 유용한 지식의 증여이다. 지식의 증여는 물질의 증여보다 훨씬 낫다”고 기술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것이든 성실한 노력이나 희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한,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물질적 재화를 증여하면 수령인은 노력이나 희생 없이 소유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것은 좀처럼 ‘그의 것’이 되지 못하고 대체로 너무도 쉽게 단순한 행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적 재화, 즉 지식을 증여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이다. 수령인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증여도 없다. 증여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며 이런 증여물은 ‘좀 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물질적 재화의 증여는 수령인을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지만, 지식의 증여는 그것이 올바른 지식이라면 수령인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든다. 또한 지식의 증여는 훨씬 더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므로 ‘개발’ 개념에 좀더 가깝다.

 

격언도 있듯이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은 그를 아주 잠시 동안 조금 도와주는 것이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그를 평생 동안 도와주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그에게 고기잡이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상당한 돈이 들어가지만 그 결과는 의심스럽다. 설령 유용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는 계속해서 고기잡이 도구의 ‘대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를 자립적이면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은 도구를 만드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이다.”

둔촌 이 집 선생의 가르침은 현대인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황금만능주의 현대사회에서 황금 보다는 한권의 책이 더 유용하다는 가르침이 우리를 서점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성남문화원은 앞으로 ‘둔촌대로’로 도로명을 개칭 한다고 한다. 또 성남시를 대표하는 ‘둔촌 사랑’ 선양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참으로 두고 볼만한 가치 있는 사업으로 기대된다. /곽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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