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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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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1-12-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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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과 성남시의회 다수당인 한나라당 간의 대립으로 새해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우선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양쪽 다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며 싸잡아 비난한다. 구체적으로 전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어 새 사업들을 펼칠 수 없는 준예산 사태가 우려된다, 시장과 한나라당이 정쟁이나 일삼는다고 비난 중이다.

 

또 이재명 시장 편에 서서 한나라당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도 눈에 띈다.

 

양자를 비난하든 한나라당 비난에 열을 올리든 이 두 가지 반응의 공통점이 있다. 시민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통의 레토릭은 수상쩍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준예산 사태와 같은 결과를 미리 상정하거나 '그들만의 리그'라는 예의 상투적인 비난을 전제해 그것을 대립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를 원인에 투사하는 것은 결코 원인을 인식할 수 없게 한다. 마찬가지로 상투적인 시선을 어떤 사태에 투사하는 것 역시 그것의 비구체성만큼이나 원인에 대한 인식을 방해한다.

 

역으로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하게 된 양자 간 대립의 원인이나 구체적인 대립의 전개과정에 대해선 언론도 시민단체들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식하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전개 중인 대립의 사태에 대한 사실상의 무관심이다. 이 시장 편에 서서 한나라당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일부 네티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나는 한 패거리라는 '자기 위무'에 지나지 않다.

 

대립의 발단을 구체적으로 돌이켜 보자. 그것은 한나라당 이덕수 의원이 시의회에서 이재명 시장의 품격을 의문에 부치는 발언을 하자 여기에 이 시장이 끼어들어 발끈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으로 시장의 발끈에 일개 수행비서까지 발끈해 가담한 데 있다.

 

이 시장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의회는 토론하는 곳이지 끼어들어 발끈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박할 게 있으면 발언 기회를 얻어 의원과 토론하면 된다.

 

재판 중인 사건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는 정회 중 이 시장의 발언 내용도 초점이 어긋난 것이다. 과연 판교철거민들이 시장에게 집단폭행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이 의원의 발언 내용은 시민의 대변자로서의 발언이라는 문맥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의원 발언에 앞서 얼마 전 판교철거민들은 모 언론사를 항의 방문해 집단폭행 보도는 일방적이라며 항의서한문을 전달한 사실이 있고, 이후 이 언론은 다른 논조의 보도를 낸 바 있다.

 

시장과 수행비서가 일으킨 이 대립의 사태는 의원들로 하여금 '이 시장의 의회관'을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강수장형의 지자체 권력구조는 일방이 일방을 부정할 수 없는 기관대립형이 전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의심은 이 시장의 거의 일상화된 의회와의 대립, 재의 요구를 통한 의회 결정에 대한 불복이란 전력이 고려되어야 한다. 때문에 시장과 의회의 대립의 정도는 아마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상생은 끝났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이러한 의회 부정적인 태도를 통해 이 시장이 보여준 것은 권력이다. 그러나 권력은 권력인데 지극히 단순한, 완전히 발가벗은 권력이다. 요즘 세상에 보기 어려운 이런 '유치한 권력'이 있다니!

 

과연 요즘 세상에 권력만으로 통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렵다. 실은 모든 통치체제가 '권위'를 이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이 권위를 이용해 통치하는 것은 모든 통치의 보편법칙이다. 이것은 정치학의 비조 마키아벨리의 으뜸가는 가르침 아닌가.

 

권위는 "그들(권력을 당하는 자들)의 행위를 그(권력을 행사하는 자)의 목적에 복종시키는 남의 의지의 권력"(마르크스, 『자본론』)이다. 이것은 권력과의 관계에서 권위란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권력을 당하는 자들의 의지를 점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서로 다른 의지 간에 승인된 권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정도로 나타나는 모든 권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예컨대 권력을 당하는 자의 어떤 필요(이익)에서 권위를 받아들이는 계산적인 복종이나 경우에 따라선 의식하기 힘든 이데올로기적인 복종 따위는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경'과 '감탄'에 의한 복종도 있는 법이다. 아마 이것만이 '진정한 권위'일 것이다. 이런 권위는 세상이 바뀌어도 남기 마련이다. 아니 오히려 정치적으로 좋은 세상에 다가갈수록 권력은 해체되고 이런 권위는 구축되어 갈 것이다.

 

시민을 대변하려는 시의원의 발언 중에 불쑥 끼어들어 발끈하는 이 시장의 태도는 단지 발가벗은 권력일 뿐이다. 게다가 꼴뚜기로 나선 수행비서까지 곁들인. 여기에 세간에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거기에 비친 표상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단지 특정한 인격들로 출현한 유치한 권력 그 자체다. 그것이 존경과 감탄에 의한 복종, 즉 진정한 권위와 무관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런 시장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유심히 보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시장 편에 가담해 한나라당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일부 네티즌들도 마찬가지다.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권력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즉 집단의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시장이 그의 수행비서와 함께 보여준 그 유치한 권력에서 그를 시장으로 만든 특정 정치세력의 유치함이 고스란히 확인된 셈이다.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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